‘위염’은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질환이다. 잦은 흡연과 음주, 자극적인 음식, 스트레스 등 위염의 원인에 노출되어 있는 탓이다. 2022년 한 해 동안 위염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수는 무려 510만여 명. 이처럼 환자수가 많다 보니, 종종 위염의 위험성은 간과되곤 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방치된 위염이 위암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방치된 위염이 위암의 씨앗이 될 수 있다|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방치된 위염, 위 환경 바꿔…암 위험까지↑
위 내에 염증반응이 오래 지속되면 위의 점막이 얇아지면서 ‘위축성 위염’이 발생한다. 또 방치된 염증은 위 점막의 구조물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소장이나 대장의 점막과 유사한 세포들로 대치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태를 ‘장상피화생’이라 한다.
만성 위염의 진행 결과인 위축성 위염과 장상피화생은 위암의 위험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장상피화생은 위암의 전구병변 중 하나로, 위선종 단계를 거쳐 위암으로 진행할 수 있다. 연구에 따라 다르나 장상피화생이 발생한 경우 위암 발병 위험이 6~10배 높은 것으로 보고된다.
장상피화생은 일반적으로 특별한 증상을 유발하지 않아, 우연히 발견되거나 방치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장상피화생의 발생 및 진행 기전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기에 진단받더라도 언제, 얼마나 심각한 위암으로 진행될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환자∙의료진 모두 시한폭탄을 안은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실정인 것.
그런데 최근 장상피화생이 위암으로 진행되는 현상에 관여하는 유전자 변이가 규명됐다. 해당 연구는 한국∙싱가포르 공동연구팀이 진행한 역대 최대 규모의 장상피화생 유전자 분석 연구결과로, 국제학술지 ‘암세포(Cancer Cell)’에 소개됐다. 장상피화생의 유전자 특성과 환자의 개별 임상 정보를 결합하면 위암 진행 고위험군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장상피화생→위암, 진행되는 특징 규명돼
서울대병원(정현수 교수)·싱가포르국립대병원(Jimmy So, Khay Guan Yeoh 교수)·듀크-싱가포르국립대의과대학(Patrick Tan 교수) 다기관 공동연구팀은 장상피화생이 위암으로 진행되는 과정을 분자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장상피화생 환자의 위 조직 샘플 1,256개를 바탕으로 게놈 프로파일링을 실시했다.
그 결과 장상피화생 발달 및 진행과 관련된 암유발유전자(Driver genes) 26개를 식별했다. 특히 줄기세포 행동조절 유전자 ‘SOX9 돌연변이’는 장상피화생 조직에서 풍부하게 관찰됐다. SOX9 돌연변이는 장내 줄기세포 클론(세포 집단)의 확장을 촉진할 수 있는데, 실제로 장상피화생이 위암으로 진행됨에 따라 단계적으로 암유발유전자 돌연변이 개수가 증가하고 클론 크기는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단일 세포 시퀀싱 분석 결과 장상피화생 장조직 내 일부 줄기세포 계통 클론은 초기 위암 세포와 유사한 형태로 나타났다. 이 결과에 대해 연구진은 장상피화생 세포가 주변 미생물군 및 미세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쉽게 변화하면서 위암 세포가 되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출처: 서울대학교병원
나아가 연구팀은 특이적인 장상피화생 아형을 발견했다. 이는 위 주요 부위에서 발견됐음에도 장과 인접한 위하부(위전정부)와 유사했으며, 건강한 위에서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구강 미생물’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만성 염증 징후가 보였으며 종양 성장을 억제하는 ARIDIA 유전자 돌연변이가 관찰되는 등 다른 장상피화생과 구분되는 비정상적 특징이 나타났다.
이 같은 분석결과를 바탕으로 연구진은 장상피화생 환자 중 위암 진행 고위험군을 식별하기 위한 예측 모델을 개발했다. 연구진은 “유전적 특성(돌연변이 개수, 클론 크기 등)과 환자의 임상 변수(연령, 흡연력, 펩시노겐 지수 등)를 결합한 덕에 위험군을 식별하는 정확도가 높다”라고 전한다.
정현수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는 유전자 프로파일링 기술이 장상피화생 환자군의 위험을 비교적 정확하게 계층화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이 결과를 바탕으로 장상피화생 환자 중 위암 진행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군과 저위험군을 구분하여 각각에 서로 다른 검사 및 치료 전략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상피화생 진단 시 꾸준한 검사 중요
장상피화생은 내시경 소견으로 의심할 수 있으며 조직검사로 진단한다. 진단될 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기적인 내시경 추적관찰이다. 통상적인 위내시경 간격은 2년이나 중등도 이상의 장상피화생이 넓은 범위로 퍼져 있거나 위암 가족력이 있는 경우 등에서는 매년 위내시경을 받는 것이 권장된다. 선종이 관찰될 경우 검사 간격이 6개월까지 줄어들기도 한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감염이 확인된다면 제균 치료를 진행해야 한다. 이미 장상피화생으로 진행된 경우 제균 치료를 하더라도 장상피화생이 호전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위암으로의 진행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는 제균 치료가 권장된다.
출처: 건강이 궁금할 땐, 하이닥 (www.hido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