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기 노출로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폐까지 도달할 수 있으며, 폐를 비롯한 여러 장기로 퍼져 상당 기간 체내에 남아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세계 최초로 입증됐다. 이에 따라 4천여 명 이상의 피해자를 낸 가습기살균제 성분과 폐 손상 간 연관성을 보여주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법원 판단은 재고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환경부 소속 국립환경과학원은 지난해 4월부터 최근까지 경북대학교 연구진, 안전성평가연구소 연구진과 공동으로 이번 연구를 진행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방사성 추적자(Radioactor tracer)를 활용하여 가습기살균제 성분물질 중 클로로메틸이소치아졸리논/메틸이소치아졸리논(CMIT/MIT)의 체내 분포 특성을 규명한 ‘가습기살균제 성분 체내 거동 평가 연구’ 결과를 지난 8일 공개했다.
방사성 추적자는 방사성 동위원소가 포함된 화합물이며, 방사성 동위원소가 붕괴 시 방출하는 에너지를 측정하여 해당 화합물의 체내 이동 경로와 분포 특성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방사성 동위원소(14C)가 표지된 가습기살균제 성분물질(CMIT/MIT)을 합성하여, 실험용 쥐의 비강(코)과 기도에 노출시킨 후 방사능 농도를 장기별, 시간대(5분, 6시간, 1주일)별로 정량화했다.
체내 방사능 농도를 관찰한 결과, ‘비강→기관지→폐’까지 CMIT/MIT가 이동하는 것을 확인했으며, 최대 1주일까지 노출 부위와 폐에 남아있는 것도 확인했다. 노출 후 폐에 분포한 양을 시간별로 살펴보면 비강 노출 방사능량을 100으로 했을 경우 5분 후 0.42, 30분 후 0.48, 6시간 후 0.21, 48시간 후 0.06, 일주일 후 0.08로 나타났다. CMIT/MIT 노출량은 폐에서 가장 많았지만 간, 심장, 신장 등에서도 확인됐다.
비강에 노출한 뒤 폐에서 측정되는 방사능량은 노출량의 1%가 안 된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이번 실험은 한 차례만 노출한 결과임을 고려해야 한다”며, “일반적으로 가습기살균제 인체 노출은 장기간 반복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연구진은 실제 사람의 폐에 도달한 CMIT/MIT는 이번 실험 측정치보다 훨씬 많은 것”이라고 추정했다.
CMIT/MIT를 비강 대신 기도에 노출했을 때 노출 방사능량이 2.2배 가량 더 많이 검출됐다. 연구진은 상기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비강에 노출했을 때보다 폐에 남아있는 양이 상대적으로 많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실험 쥐의 비강과 기도 부위에 CMIT/MIT를 반복 노출 후 기관지폐포세척액의 총 염증세포 수와 폐 부위 조직병리학적 확인을 통해 폐 손상을 평가했다. 그 결과, 폐 손상과 관련 있는 염증성 사이토카인 등이 농도 의존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다. CMIT/MIT가 호흡기 노출을 통해 폐까지 도달할 수 있고 이에 따라 폐 질환을 유발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본 연구 결과는 국제 환경 학술지인 ‘인바이런먼트 인터네셔널(Environmental International)’ 12월호에 게재됐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1월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된 SK케미칼과 애경산업 관계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가습기살균제 관련 항소심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지난 9월 제31차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위원회에서 피해등급이 정해진 사람까지 총 4천417명, 사망자는 1천789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참고 = 환경부
출처: 건강이 궁금할 땐, 하이닥 (www.hido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