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노년층 비만 문제가 새로운 보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대한비만학회가 발간한 ‘비만병 팩트시트 2024’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체지방률 기준 비만 유병률은 52.8%로, 노인 2명 중 1명이 비만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질병관리청의 ‘2023 국민건강통계’ 자료에 의하면 70세 이상 여성의 복부 비만 유병률은 57.2%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노년기에는 근육량이 줄고 복부 지방이 늘어나기 쉬워, 전반적인 건강에 부담을 줄 수 있다. 특히 이러한 변화가 비만으로 이어지면, 근육 감소를 가속화하고 당뇨병이나 고혈압 같은 대사 질환의 위험까지 높일 수 있으므로 각별한 관리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노년기 비만은 구체적으로 어떤 위험성을 갖고 있으며, 건강하게 체중을 관리하기 위해 기억해야 할 원칙은 무엇일까? 가정의학과 김선현 교수(가톨릭관동대학교 국제성모병원)의 설명을 바탕으로 자세히 짚어본다.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노년층에 흔한 ‘근감소성 비만’이란
비만은 체지방이 과다해 이로 인해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는 상태를 말한다. 나이에 관계없이 발생하지만, 청장년층과 노년층에서의 비만은 그 특성과 관리 방식이 다르다.
청장년층에서는 주로 과도한 칼로리 섭취, 운동 부족, 스트레스, 수면 부족, 호르몬 변화 등이 비만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로 인해 고혈압, 당뇨병, 이상지질혈증, 지방간 등 다양한 대사성 질환의 발생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심혈관질환으로 이어질 위험도 커진다. 다만, 아직은 기초대사량이 상대적으로 높고 근육량이 어느 정도 유지되기 때문에 식이 조절과 운동을 통해 체중 감량이 비교적 잘 이뤄지는 편이다.
하지만 노년기에 접어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노년기에는 기초대사량이 낮아지고 근육량도 함께 감소해, 체중은 쉽게 늘고 감량은 더욱 어려운 체질로 변하게 된다. 보통 근육량은 40대 이후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70대까지 10년마다 약 8%씩 감소하며, 이후로는 10년마다 최대 15%까지 줄어든다. 특히, 하체 근력은 70대 이후 10년마다 적게는 25%, 많게는 40%까지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겉으로 보기에는 날씬하거나 정상 체중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근육량이 적고 체지방만 많은 ‘마른 비만’의 고령자도 적지 않다.
김선현 교수는 “노년기에는 기초대사량이 감소하고, 근육량이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근감소증’이 흔해진다”라며 “이 상태에서 비만이 동반되면 ‘근감소성 비만(sarcopenic obesity)’이라는 위험한 조합이 만들어진다”라고 설명했다. 근감소성 비만은 체력이 전반적으로 약해지는 ‘노쇠’를 유발하고, 여러 만성질환이 동시에 생기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또한 심혈관 질환 위험을 높이고, 사망률 증가와도 연관이 있는 중요한 건강 위험 요인으로 지목된다.
당뇨병부터 치매까지...비만 노인이 더 취약한 이유
노년기 비만은 근육량이 줄어드는 특성상 만성질환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다. 김선현 교수는 “근감소성 비만은 신체 기능 저하뿐 아니라 인슐린 저항성, 대사증후군 등과 관련이 있다”라면서 “특히 고령자의 체지방은 복부 내장지방에 집중되기 때문에 대사적으로 더 위험하다”라고 설명했다.
노년기에 흔한 복부비만은 인슐린 저항성과 근감소를 동반해 당뇨병 발생 위험을 높이고, 이미 당뇨병을 앓고 있는 경우 관리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또한 내장지방은 염증성 사이토카인(IL-6, TNF-α 등)을 분비해 혈관 수축과 염분 저류를 유도하는데, 노화로 탄력이 떨어진 혈관에 비만으로 인한 부담까지 더해지면 혈압의 변동성이 커진다. 이로 인해 고혈압뿐 아니라 뇌졸중, 심부전 등 심혈관계 합병증 위험도 높아진다.
게다가 비만한 노인은 낙상과 골절 위험이 높아지고, 신체 회복력이 떨어지는 노년기에는 그 후유증이 더욱 치명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비만이 골다공증을 직접 유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낙상 시 체중이 충격을 증폭시켜 골절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김 교수는 “과도한 체중은 무릎과 고관절에 부담을 주어 통증이나 보행 장애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독립적인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근감소와 비만이 인지 기능 저하 및 치매와도 연관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22년 일본 쥰텐도대 연구팀이 노인 1,600여 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근감소성 비만 노인의 경도인지장애 판정 확률은 41%로, 비만이나 근감소증이 없는 노인보다 15%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근감소증이 어떤 경로를 통해 치매 및 인지 기능 저하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염증성 사이토카인 등이 뇌세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가설이 유력하다. 근육량이 줄어드는 근감소증 상태에서는 신체 전반의 염증 반응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때 면역 세포가 분비하는 염증성 사이토카인이 많아지면, 뇌혈관 장벽을 통과해 중추 신경계에 염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뇌세포 손상이나 신경 전달 물질 교란 등을 초래할 수도 있다. 또한 운동량 감소로 인한 뇌 자극 부족, 뇌 혈류 감소 등도 인지 기능 저하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건강한 체중 유지가 핵심...“약물 치료는 신중하게”
노인의 비만 관리는 단순한 체중 감량이 아니라, 신체 기능과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한 ‘건강한 체중 유지’가 목표다. 김선현 교수는 “노년기에는 잘 먹고, 잘 움직이며, 잘 자고, 잘 생활하는 것, 이 네 가지가 곧 비만 관리의 핵심이다”라고 강조했다.
식사는 지나친 열량 제한보다 양질의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는 균형 잡힌 식단이 중요하다. 김 교수는 “생선, 달걀, 두부, 살코기 등 단백질을 매 끼니 포함시키고, 채소와 통곡물을 중심으로 식단을 구성하는 것이 좋다”라면서 “유제품도 적절히 포함하고, 당분과 포화지방은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조언했다.
체중 관리에는 운동이 동반되어야 한다. 적절한 운동이 동반되지 않은 체중 관리는 오히려 근감소성 비만을 만들거나 골다공증을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체력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저 강도의 유산소 운동(걷기, 수영, 자전거 타기 등)을 기본으로 할 것을 권한다.
또한 주 2~3회 근력 운동(저항 밴드, 아령 등)을 병행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운동을 시작할 때는 너무 무리하게, 장시간 하지 말고 조금씩이라도 차차 늘려가는 것이 효과적이다. 김 교수는 “운동은 개인의 체력과 질환 상태를 고려해 안전하게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며, 필요시 전문가의 지도를 받는 것이 좋다”라고 전했다.
식이요법과 운동으로 체중 감량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비만 관리를 위한 약제를 사용할 수도 있으나, 반드시 의사와 상의할 것을 권한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비만 치료제인 GLP-1 유사체(예: 세마글루타이드)에 대해 김 교수는 “식욕 억제 및 체중 감량 효과가 있어 고령자에게도 사용 가능성이 있으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GLP-1 유사체는 식사량을 급격히 줄여 근감소를 유발할 수 있고, 오심·구토·탈수 등의 위장관 부작용이 고령자에게 더 민감하게 나타날 수 있다”라며 “초기 용량 조절과 정기적인 모니터링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또한 “당뇨병 약물을 병용 중인 환자라면 저혈당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김 교수가 제안하는 '노년기 비만 관리의 5가지 원칙'이다.
<노년기 비만 관리 원칙 5>
① 근육을 지키는 체중 관리
:단백질 섭취와 근력 운동을 병행해 체중 감량 시 근육이 손실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② 건강한 식사 습관 유지
:일정한 식사 패턴과 균형 잡힌 영양소 섭취로 혈당, 혈압, 콜레스테롤 등 대사를 안정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③지속 가능한 생활습관 만들기
:유행하는 식품이나 체중 감량에 집중하는 극단적 다이어트보다는, 실천 가능한 식사 조절과 운동 습관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④심리적 안정과 사회적 지지 확보
:외로움이나 우울감은 식욕과 활동량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가족 및 지역 사회와의 정서적 연결도 중요하다.
⑤ 의료진과의 정기 상담 및 모니터링
:고령자는 여러 만성질환을 함께 앓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단순한 체중 변화뿐 아니라 근육량, 영양 상태, 내과적 지표까지 종합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출처: 건강이 궁금할 땐, 하이닥 (www.hido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