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치매, 뇌졸중과 함께 ‘3대 노인성 질환’ 중 하나로 언급되는 파킨슨병. 신경세포 기능이 저하되면서 손발이 떨리거나 몸이 굳고, 움직임이 느려지는 증상이 나타나는 신경퇴행성 질환이다. 전 세계적으로 60세 이상 노년층의 약 1~2%가 앓고 있으며, 전체 환자의 약 10~15%는 50세 이전에 발병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주로 고령층에서 발생하는 파킨슨병은 초기 증상을 단순한 노화 현상으로 오인해 진단이 늦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치료 시기를 놓치면 흡인성 폐렴이나 파킨슨병 치매 등 심각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질환에 대한 인식과 빠른 대응이 필요하다.
신경외과 박광우 교수(가천대 길병원)는 “파킨슨병의 조기 진단과 관리는 질병의 진행을 늦추고 합병증을 최소화하며, 환자가 가능한 한 최상의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강조한다. 파킨슨병을 조기에 알아차릴 수 있는 주요 징후와 효과적인 치료법 및 관리 방법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파킨슨병의 대표 증상은 떨림, 경직, 구부정한 자세, 자세 불안정 등이다|출처: 클립아트코리아
도파민 세포 손상으로 시작되는 ‘파킨슨병’
파킨슨병(Parkinson’s disease)은 알츠하이머병 다음으로 흔한 퇴행성 뇌 질환으로, 중뇌의 흑색질이라 불리는 부위에서 도파민 세포가 점점 사멸하면서 발생한다. 도파민은 움직임 조절, 동기부여, 감정, 보상감 등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로, 70~80% 가 파괴되면 뇌가 신체에 적절한 신호를 전달하지 못하면서 다양한 이상 증상이 나타난다. 도파민 세포가 사멸하는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산화 스트레스와 만성 염증, 비정상 단백질(알파-시누클레인)의 축적, 미토콘드리아 기능 저하 등이 유력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파킨슨병은 서양의 경우 여성보다 남성의 발병률이 1.5~2배가량 높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의 발병률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발병 위험이 커지며 유전적 요소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40세 미만의 일부 젊은 환자에서는 유전적 요인이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다양한 운동·비운동 증상 동반... 파킨슨병의 전형적인 신호들
파킨슨병은 대표적으로 떨림, 경직, 서동(움직임 느려짐), 구부정한 자세, 자세 불안정 등 운동 증상을 동반한다. 떨림은 주로 앉거나 누워 있을 때 잘 발생하며, 근육이 뻣뻣해지는 경직은 허리 통증, 다리 통증, 저림 증상으로 나타나 관절이나 디스크 질환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걷는 도중 발이 땅에 붙은 듯 움직이지 않는 ‘운동 동결(freezing)’ 현상도 자주 관찰된다.
이처럼 파킨슨병은 눈에 띄는 운동 증상이 주요 특징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에 앞서 나타나는 비운동성 증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광우 교수는 “환자의 70~90%는 음식 냄새나 향수를 잘 맡지 못할 수 있는 후각 저하를 겪는데, 이는 파킨슨병의 초기 신호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만성 변비 역시 매우 흔한 초기 증상으로, 소화기관의 운동성 저하로 인해 발생한다.
렘수면 행동장애도 주목해야 할 징후다. 박 교수는 “렘수면 행동장애는 수면 중 꿈의 내용대로 소리를 지르거나 팔다리를 움직이는 증상으로, 파킨슨병을 진단받기 수년에서 수십 년 전에 발생할 수 있다"라고 전했다. 이 밖에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우울감, 불안감을 겪을 수 있고, 특별한 활동 없이도 쉽게 피로해지는 만성 피로감이 나타날 수 있다. 기립성 저혈압으로 인한 어지러움, 빈뇨나 절박뇨 같은 소변 문제, 발기부전과 같은 자율신경계 이상 증상들도 파킨슨병의 초기 신호일 가능성이 있다.
박 교수는 “기억력, 집중력, 계획 능력의 경미한 저하와 같은 인지 기능 변화나, 특별한 원인 없이 발생하는 몸의 통증, 저림, 감각 이상 등도 파킨슨병의 전조증상으로 간주될 수 있다"라면서 “이러한 비운동성 증상들은 종종 다른 질환으로 오인되어 파킨슨병의 조기 진단이 지연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치매로도 진행… 알츠하이머 치매와는 달라
특히 파킨슨병 환자의 약 30~40%는 치매로 발전할 수 있는데, 이는 일반 인구 대비 약 6배 높은 수치다. 다만 이때 발생하는 치매는 알츠하이머 치매와는 다른 '파킨슨병 치매(Parkinson's Disease Dementia, PDD)’다.
박광우 교수는 “알츠하이머 치매는 기억력 저하가 주된 초기 증상으로, 베타-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의 축적이 주요 병리이다. 반면, 파킨슨병 치매는 주의력과 실행 기능 저하, 시공간 인지 장애, 인지 기능의 변동, 시각적 환각, 망상, 렘수면 행동장애 등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라고 설명했다.
파킨슨병은 도파민 경로뿐만 아니라 아세틸콜린, 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 등 여러 신경전달물질 시스템의 광범위한 기능 장애가 발생하는 질환이다. 이 가운데 특히 아세틸콜린의 결핍은 기억력과 주의력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인지 기능 저하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교수는 “일부 환자에서는 파킨슨병의 병리적 단백질인 ‘알파-시누클레인’ 뿐만 아니라,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베타-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이 함께 축적되는 ‘복합 병리’가 나타나기도 한다”라면서 “이 경우 인지 저하가 더 빠르고 심각하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고령, 심한 운동 증상, 자율신경계 이상, 환각 경험 등은 파킨슨병 환자에서 치매 위험을 높이는 주요 요인이다”라고 덧붙였다.
운동·물리치료 등 병행해야...“조기 진단이 예후 가른다”
파킨슨병 치료의 기본은 약물치료와 운동치료의 병행이다. 특히 초기와 중기에는 약물치료 효과가 매우 뛰어나지만, 완치가 어려운 진행성 신경퇴행성 질환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약물 복용이 필요하다. 박광우 교수는 “약물복용을 갑자기 중단할 경우 증상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으므로, 의사의 지시 없이 약물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파킨슨병 치료에 가장 효과적인 약물은 레보도파다. 치료 초반 3~5년 동안은 매우 좋은 반응을 보이지만 병이 진행되면서 약효 지속 시간이 짧아지고, 운동 합병증이나 정신 신경계 부작용 등이 나타날 수도 있다. 박 교수는 “환자마다 약물 반응이 다르므로 약물의 종류, 용량, 복용 시간 등을 조정해야 한다"라면서 “약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약물을 조합하거나, 비약물적 치료(운동, 물리치료, 심부뇌자극술 등)를 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파킨슨병은 조기 진단과 빠른 치료 개입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환자는 도파민을 생성하는 신경세포의 80% 이상이 손상된 뒤에야 전형적인 운동 증상이 나타나 진단을 받지만, 조기에 발견할 경우 광범위한 신경 손상이 진행되기 전에 적절한 개입이 가능하다. 박 교수는 “초기 단계에서 시작한 약물 치료는 뇌의 보상 메커니즘이 아직 기능할 때 이뤄지므로 반응이 더 좋다”라면서, “레보도파와 같은 약물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장기적인 부작용도 줄일 수 있다”라고 전했다.
또한 초기부터 운동·물리치료·언어치료·직업치료를 병행하면 근육 기능 유지, 낙상 위험 감소, 의사소통 능력 보존 등에 효과적이다. 이는 환자의 독립성과 사회 참여 유지, 우울·고립 예방, 경제적 부담 감소로 이어진다. 박 교수는 “현재 진행 중인 유망한 임상 시험 대다수가 초기 환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조기에 진단된 환자들은 새로운 치료 기회를 얻을 가능성도 더 높다”라고 설명했다.
운동·식단·사회적 연결 도움 돼...종합적인 관리가 관건
파킨슨병 관리의 핵심은 약물치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일상 속에서 종합적인 생활습관 개선을 실천하는 것이다. 특히 운동은 파킨슨병 관리에서 중요한 요소로 균형 훈련, 근력 운동, 유산소 운동(걷기, 수영, 자전거 타기), 스트레칭을 포함한 복합적인 운동 프로그램이 권장된다. 박광우 교수는 “특히 태극권, 요가, 댄스(특히 탱고)가 균형과 유연성 향상에 효과적이다"라면서 “파킨슨병 환자를 위한 특화된 운동 프로그램(LSVT BIG, PWR! Moves 등)도 도움이 된다”라고 전했다.
이어 “하루 30분 이상, 주 5일 이상 운동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무조건 걷기만 하는 것은 운동의 효과가 크지 않다. 특히 파킨슨병 환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스트레칭을 동반한 근력 운동이다”라고 강조했다.
식이요법도 중요하다. 과일, 채소, 통곡물, 올리브오일, 생선이 포함된 지중해식 식단은 신경 보호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권장된다. 항산화 물질이 풍부한 식품을 충분히 섭취하고, 염증을 유발할 수 있는 가공식품과 설탕은 제한하는 것이 좋다. 박 교수는 “레보도파 등 약물 효과를 높이기 위해 단백질 섭취 시기를 조절할 수 있으며, 변비 예방을 위해 수분과 식이섬유를 충분히 섭취할 것을 권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수면, 스트레스 관리, 인지 기능 유지, 사회적 활동 역시 증상 관리에 도움이 된다. 규칙적인 수면-기상 시간을 유지하고, 편안한 수면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스트레스 역시 파킨슨병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명상, 심호흡, 마음 챙김, 요가 등 스트레스 감소 기법을 정기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박 교수는 “인지 기능 유지를 위해 두뇌를 활발하게 사용하는 활동, 예를 들어 독서, 퍼즐, 게임, 새로운 기술 배우기, 사회적 교류 등의 활동도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또한 파킨슨병 환자들은 병이 진행됨에 따라 목소리가 작아지거나 억양이 단조로워지는 등 음성 변화를 자주 겪는데, 이러한 음성 기능 저하를 겪는 환자에게는 ‘LSVT LOUD' 프로그램이나 정기적인 발성 훈련이 도움이 된다. 가족·친구와의 소통을 유지하고 파킨슨병 환자 지원 모임에 참여하는 등 사회적 고립을 막는 활동도 중요하다.
박 교수는 “이러한 종합적인 생활습관 개선은 단순한 보조 수단이 아니라, 약물 치료와 더불어 파킨슨병 증상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삶의 질을 유지하는 필수 전략이다”이라고 조언했다.
출처: 건강이 궁금할 땐, 하이닥 (www.hido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