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것.’ 한 번쯤 들어봤을 건강의 기본 원칙이다. 그런데 이 중 '잘 싸는 것', 즉 원활한 배변은 생각보다 많은 이들에게 어려운 과제다. 실제로 전 세계 인구의 15~20% 정도가 변비를 겪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2020년 기준 약 63만 6,000명이 변비로 병원을 찾았다.
대부분의 변비는 생명을 위협하지는 않지만 복부 팽만감, 소화불량, 치질 등으로 인해 일상 속에서 다양한 불편감을 유발할 수 있다. 특히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변비약을 무분별하게 복용할 경우 장 무력증, 대장 흑색증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변비의 원인과 근본적인 해결방법, 그리고 변비약의 부작용과 올바르게 섭취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소화기내과 김솔 교수(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의 조언을 토대로 상세히 짚어본다.
변비는 전 인구의 15~20% 정도가 경험할 정도로 흔히 발생한다|출처: 클립아트코리아
단순히 안 나오는 게 아니다…변비의 다양한 증상들
변비는 단순히 ‘변이 안 나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배변 횟수 감소 외에도 다양한 증상이 동반될 수 있다. 국제적 진단 기준인 로마 기준(Rome Criteria IV)에 따르면 배변 시 과도한 힘주기, 딱딱하고 염소똥 같은 형태의 변, 불완전한 배변감, 항문 폐쇄감, 손가락을 이용한 배변 보조, 주 3회 미만의 배변 횟수 중 2가지 이상이 3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의학적으로 변비로 진단된다.
'배변 패턴의 규칙성과 질' 역시 진단 기준이 될 수 있다. 대한내과학회지에 따르면 정상적인 배변은 '형태가 있는 변을 규칙적으로, 불편 없이 배출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즉, 배변 횟수보다는 편안하고 일정하게 대변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배변이 얼마나 건강한지를 가늠할 수 있는 또 다른 기준은 바로 대변의 상태다. 정상적인 대변은 하루 200g 이하, 수분 함량은 60~85% 수준이다. 만약 대변이 지나치게 딱딱하거나 수분이 부족하다면 장의 운동성 저하나 수분 흡수 불균형 등의 이상을 의심해 볼 수 있다.
김솔 교수는 “배변은 단순한 생리현상이 아니라 신체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반영하는 지표”라며 “규칙적인 배변은 소화기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고령층·여성에서 변비 많아...장 운동 감소와 다이어트 탓
변비의 원인은 다양하다. 성별, 연령, 생활습관 등이 영향을 미치며, 특히 여성과 고령층에서 발생률이 높다. 고령자는 나이가 들수록 장의 연동운동이 느려지고, 복근과 골반저근 등 배변을 도와주는 근육의 힘도 약해지면서 변비가 생기기 쉬운 환경에 놓이게 된다. 또한 신체 전반적인 활동량이 줄어들고 식사량도 감소하면서 대변의 부피가 줄어 장을 자극할 기회가 감소한다.
또한 여성의 변비 유병률은 남성보다 약 4배가량 높다. 이는 임신·출산, 에스트로겐 등 호르몬 변화 같은 생리적 요인에 더해, 음식 섭취량을 제한하는 다이어트 습관이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김솔 교수는 “식사량을 지나치게 줄이는 소식 다이어트를 할 경우, 대변의 양 자체가 줄고 장의 연동운동도 느려져 대변이 장에 오래 머무르게 된다"라며 “이로 인해 배변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극단적인 원푸드 다이어트나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이요법(Ketogenic diet)도 변비를 유발할 수 있다. 김 교수는 “탄수화물 섭취가 하루 100g 이하로 줄어들면, 지방 분해 과정에서 ‘케톤’이라는 대사산물이 생성되며 소변량이 급격히 늘어난다”라며 “이로 인해 체내 수분이 감소하고, 수분이 부족한 딱딱한 변이 형성돼 변비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불규칙한 식사, 단백질 위주의 식단 등도 변비를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생활습관 개선이 변비 치료의 출발점
변비 치료는 생활습관 개선에서 시작된다. 김솔 교수는 "변비 치료는 생활 습관 개선으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효과가 없을 경우에만 약물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우선 식이섬유 섭취는 변비 예방의 핵심이다. 김 교수는 "어떤 형태의 다이어트를 하더라도 일정 이상의 식이섬유 섭취는 필요하다"라면서 "식이섬유는 장내 노폐물을 흡착하고 수분을 흡수해 대변의 양을 늘려주는 역할을 하므로, 성인의 경우 하루 20~30g의 식이섬유 섭취가 변비 예방에 도움이 된다"라고 설명했다. 식이섬유는 곡물, 뿌리채소, 견과류, 껍질째 먹는 과일, 야채 등에 풍부하다.
충분한 수분 섭취도 중요하다. 딱딱한 변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서는 하루 1.5~2L(약 8컵) 정도의 물을 마시는 것이 좋다. 김 교수는 "특히 아침에 일어나 공복에 마시는 물은 '위 대장 반사운동'을 일으켜 자연스러운 배변을 유도한다"라면서 "커피나 탄산음료는 이뇨 작용이 활발해 오히려 체내 수분을 배출할 수 있으므로 순수한 물을 마시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조언했다.
장운동을 촉진하는 신체활동도 변비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김 교수는 "매일 30분 이상의 걷기, 산책, 조깅과 같은 유산소 운동이 변비 개선에 효과적일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변비는 생활습관의 개선만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만성적인 증상으로, 약제에만 의존하기보단 생활습관의 개선을 우선시할 것을 권고한다"라고 강조했다.
팽창성→삼투성→자극성…변비약도 사용 순서가 있다
생활습관 개선으로도 변비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약물을 사용해 볼 수 있다. 다만 변비약도 종류별 사용 순서가 있으며, 무분별한 사용은 금물이다.
김솔 교수는 "변비약(완하제)은 작용 기전에 따라 크게 팽창성, 삼투성, 자극성 하제로 구분된다"라면서 "의학적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변비약은 전문의와의 상의를 통해 단계적으로 그 사용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변비의 첫 번째 단계로 권장되는 약물은 팽창성 하제다. 식물성 섬유소가 주 성분인 차전자피, 메틸셀룰로오스, 폴리카보필 등이 해당된다. 팽창성 하제는 장내 수분을 흡수해 대변의 부피를 늘리고 불순물을 흡착해 배출을 돕는다. 장기 복용이 가능하고 안전성도 높지만, 충분한 수분 섭취가 반드시 동반돼야 한다.
팽창성 하제로 효과가 없을 경우, 삼투성 하제를 사용해 볼 수 있다. 삼투압 작용으로 대장 내로 수분을 끌어들여 변을 부드럽게 만들고, 장의 연동운동을 촉진한다. 락툴로오스, 폴리에틸렌글리콜 등이 대표적인 삼투성 하제 약물이다. 단, 신장 기능이 저하된 환자는 마그네슘 성분이 포함된 약제 사용을 피해야 한다.
자극성 하제는 장 점막을 직접 자극해 빠른 장운동을 유도하는 약물이다. 비사코딜, 피코설페이트, 센노사이드 등의 단일제와 센나, 알로에, 카산트라놀, 카스카라, 대황 등이 포함된다. 실제 변비 환자들 중에는 자극성 하제를 장기간 복용해 온 이들이 적지 않다. 약국에서 의사 처방 없이도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데다, 효과가 빠르다 보니 습관적으로 복용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자극성 하제는 일반적으로 '내성이 생긴다'는 우려와 함께 언급되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연구 결과는 아직 부족하다. 다만 약제에 따라 장기 복용 중 장 반응성의 변화나 심리적 의존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복용량이 점차 늘어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자극성 하제 오래 쓰다간...장 무력증·흑색증 부른다
자극성 하제의 용량 증가나 습관화된 복용은 단순한 의존을 넘어, 신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김솔 교수는 "자극성 하제의 장기 사용이 암과 같은 심각한 질환으로 진행되지는 않지만 대장 흑색증, 수분과 전해질 손실, 장 무력증, 장 신경의 손상을 초래하여 변비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으므로 예방적 차원에서 자극성 하제의 장기 사용은 피하는 것이 좋다"라고 설명했다.
장 무력증은 대장의 연동운동 기능이 저하되어 장 외부의 자극 없이는 배변이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 자극성 하제가 장 신경을 반복적으로 자극하면서 발생하며, 심할 경우 비가역적 변화로 이어져 수술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또한, 일부 동물실험에서는 자극성 하제를 장기 투여할 경우 장 신경총에 손상이 생기고, 영구적인 운동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다만, 이러한 현상이 인간에게도 똑같이 발생하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대장 흑색증은 현재 시판되는 다양한 일반의약품 완하제에 다수 포함되어 있는 안트라퀴논 계통의 하제를 장기 복용한 환자에서 발생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이는 점막에 갈색 색소가 침착되는 현상으로, 현재까지는 임상적 유해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되며, 약물 복용을 중단하면 9~12개월 내 자연 회복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색소 침착은 만성 하제 복용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로 활용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약물 복용, 안전이 우선…효과 없으면 전문의 상담 필수
만약 생활 습관만으로 변비가 나아지지 않고, 변비약 사용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안전한 복용이 중요하다. 김솔 교수는 "변비 유형에 따라 적절하게 약물을 선택해야 한다"라면서 “정상 통과형 변비에는 팽창성 하제가, 서행성 변비나 배변장애형 변비, 분변 매복의 경우에는 삼투성 하제를 우선 사용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자극성 하제는 급성 변비에 단기간 사용할 때만 적합하다.
정상통과형 변비란 대장 내 변이 정상 속도로 이동하지만 배변 시 불편감이나 배변 횟수 감소, 잔변감 등 변비 증상이 나타나는 형태를 말한다. 서행성 변비는 대장 운동이 느려져 변이 천천히 이동하는 형태의 변비로, 배변 간격이 매우 길고 변이 딱딱해지기 쉬운 것이 특징이다. 분변 매복이란 직장이나 대장 끝부분에 딱딱하게 굳은 변이 덩어리로 뭉쳐 배출되지 않고 고여 있는 상태다.
또한 김 교수는 "팽창성 하제는 충분한 물과 함께 복용해야 하며, 서서히 용량을 증가시키는 것이 안전하다. 자극성 하제는 수주에서 수개월의 단기간만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장기간 사용이 필요한 경우에는 팽창성 하제나 삼투성 하제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처방 없이 복용하는 일반 변비약을 장기간 사용해도 증상이 개선되지 않으면, 전문의 상담을 통해 변비의 원인과 유형을 정확히 진단받고 개인에게 맞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출처: 건강이 궁금할 땐, 하이닥 (www.hido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