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는 주로 65세 이상의 노년층에서 호발하는 질환으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 40~50대에서 발병하는 '조발성 치매' 환자가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조발성 치매 환자 수는 2009년 1만 7,772명에서 2019년 6만 3,231명으로 10년간 3.6배나 증가했다. 이는 전체 치매 환자수의 약 8%에 해당하는 수치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치매가 발병하면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쉽고 경제적, 정서적 측면에서도 많은 문제를 동반할 수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이승엽 교수(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는 "조발성 치매는 병의 진행이 빠른 경우가 많고 치료 옵션이 제한적이어서 치료에 어려움이 있다"라면서 "특히 비교적 이른 나이에 치매에 걸리면 더욱 심한 좌절감을 보이고, 우울증이나 자살 위험성 또한 증가할 수 있으므로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로부터 조발성 치매의 특징과 치료법, 그리고 치매 예방을 위한 10가지 예방법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65세 이전에 발병하는 치매를 조발성 치매라고 한다 |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조발성 치매, 진행 속도 빠르고 유전적 요인 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치매는 노인성 치매, 즉 '만발성 치매'다. 만발성 치매를 유발하는 가장 흔한 원인은 알츠하이머병으로 전체 치매의 60~70%를 차지한다. 알츠하이머는 뇌에서 아밀로이드 베타라는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축적되면서 신경 세포가 손상되고 인지 기능이 저하되는 질환이다.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기억력 저하가 두드러지고, 진행 속도는 상대적으로 느린 편이다.
'조발성 치매'는 65세 이전에 발병하는 치매로, 역시 알츠하이머병이 원인인 경우가 많지만 만발성 치매에 비해 병의 진행 속도가 빠르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유전적 영향이 큰데, 조발성 치매의 약 10~15%는 유전으로 인한 가족형 알츠하이머병 치매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발성 치매는 알츠하이머병 외에 다른 원인으로 발생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승엽 교수는 "조발성 치매는 만발성 치매와 달리 알츠하이머성 병리 외에 전두 측두엽치매, 혈관성 치매, 알코올 치매, 외상성 치매 등의 원인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라고 설명했다.
전두 측두엽치매는 뇌의 전두엽과 측두엽 문제로 인해 발생하며 언어 장애가 주 증상이다. 초기에는 기억력이 정상이라 치매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혈관성 치매는 뇌졸중, 만성 고혈압, 당뇨병 등이 뇌혈관을 손상시켜 나타날 수 있으며, 인지 기능과 사고력이 급격히 저하되는 특징이 있다. 알코올 치매는 과도한 알코올 섭취가 원인으로, 알코올이 뇌세포에 독성을 미쳐 뇌의 회로를 손상시켜 발생한다. 외상성 치매는 머리에 가해지는 강한 충격이 원인이다.
이유 없이 화내고 충동성 보여...언어 능력 저하되기도
이승엽 교수는 "조발성 치매의 경우 만발성 치매에 비해 성격의 변화와 충동성이 두드러지고, 언어 또는 운동 능력 저하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라고 설명했다.
성격의 변화와 충동성은 전두엽의 손상 때문이다. 전두엽은 감정 조절, 충동 억제, 사회적 판단력을 담당하는 부위로, 이 부분에서 손상이 일어나면 사회적 규칙에 대한 인식이 저하되고 공격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또한 언어를 담당하는 뇌 영역이 손상되면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거나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는 능력이 감소한다. 기저핵과 소뇌 등 운동 능력을 담당하는 뇌 영역도 문제가 생기면 보행 장애가 나타나고 근육 경직, 손떨림과 같은 증상을 보일 수 있다.
이 교수는 "치매 가족력이 있는 사람인데 갑자기 기억력 저하 등의 인지 문제가 발생한 경우, 또는 특별한 이유 없이 화를 더 잘 내게 되거나 먹을 것에 집착하는 등 성격이 변하는 경우, 충동 조절이 어려워진 경우, 자의로 조절할 수 없는 떨림이나 환각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병원에서 자세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원인에 따라 약물치료 등 진행..."치매 예방, 생활습관 개선에서 시작"
조발성 치매는 인지 기능 저하뿐만 아니라 언어 장애, 운동 장애 등 임상 증상이 다양하므로 신경학적 검사, 유전적 검사, 뇌영상 검사 등을 통해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
치매의 치료는 약물치료와 비약물적 치료, 생활습관 관리로 나눌 수 있다. 약물치료의 경우 알츠하이머병이 원인이라면 만발성 치매와 마찬가지로 콜린에스터라제 억제제, NMDA 수용체 길항제를 사용해 기억력 저하 속도를 완화하고 인지 기능을 개선할 수 있다. 혈관성 치매는 뇌혈관 손상이 원인으로 혈액 순환을 개선하는 항고혈압제, 항혈소판제, 고지혈증 치료제 등을 고려한다. 전두 측두엽치매는 직접 치료하는 약물은 없으나 항우울제와 향정신병제로 행동 조절과 감정 안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최근 도입된 치매 치료제 '레켐비' 역시 조발성 치매 치료에 효과적인 옵션이 될 수 있다. 레켐비는 알츠하이머병 치료를 위해 개발된 약물로, 뇌에 축적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승엽 교수는 "레켐비는 알츠하이머에 있어서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좋은 치료 옵션이 될 수 있다"라면서도 "병의 진행 자체를 막지는 못하고 고가의 약제비용으로 사용에 제한점이 있는 한계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외에 비약물 치료로는 기억력, 판단력, 언어 능력을 유지하기 위한 인지 재활치료가 있으며 뇌 혈류 개선과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운동치료, 뇌세포를 보호하고 혈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식이요법 등이 있다.
치매를 완전히 예방하는 방법은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치매의 위험성을 높이는 요인들을 조절하고 생활 습관을 개선한다면 발병 위험을 낮출 수 있다. 조발성 치매의 예방법은 일반적인 치매 예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음은 치매 예방을 위해 이 교수가 제안한 10가지 생활습관이다.
<치매 예방을 위한 10가지 생활습관 >
① 술은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기
② 금연하기
③ 하루 30분 이상, 숨이 가쁠 정도의 강도로 유산소 운동하기
④ 과체중 또는 비만이라면 체중 감량하기
⑤ 우울증은 적극적으로 치료하기
⑥ 고혈압, 당뇨병 잘 관리하기
⑦ 코골이가 있다면 수면 무호흡증 진료를 받고 치료하기
⑧ 머리 부상 위험이 있는 행동 피하기(자전거, 킥보드, 오토바이는 가급적 타지 말고 타야 한다면 안전모 착용하기)
⑨ 불법 약물 사용을 피하고 건강한 식단으로 섭취하기
⑩ 친구나 가족과 소통하며 활발한 사회적 관계 유지하기
도움말: 이승엽 교수(가톨릭대학교 은평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출처: 건강이 궁금할 땐, 하이닥 (www.hido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