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철분이 부족해 발생하는 철 결핍성 빈혈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질병이다. 반대로 철분이 과도하게 흡수되는 질병이 있는데, 바로 혈색소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나타나는 희귀질환이지만 서양권에서는 200~300명 중 1명꼴로 발병하고, 10명 중 1명은 변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흔한 질병이기도 하다.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유전질환 ‘혈색소증’…여성보다 남성에서 많이 발병
혈색소증은 철에 대한 체내 대사에 이상이 생기는 질병이다. 사람들은 보통 음식을 통해 하루 10mg의 철을 섭취하며, 이 중 10%인 1mg 정도가 십이지장과 상부 소장에서 체내로 흡수된다. 흡수된 철의 대부분은 헤모글로빈 내에 쌓이고, 일부는 골수, 비장, 간 등에 저장된다. 몸이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철이 체내에 충분히 저장됐을 경우 소장에서의 철 흡수량을 감소시킨다. 남은 철분은 각질이나 장세포들을 따라 체외로 소실된다.
그러나 혈색소증 환자는 음식을 통해 섭취한 철을 20%까지 흡수하는 한편, 과잉된 철분을 이용하거나 배출하지 못한다. 몸속에 남은 철분은 간, 심장 및 췌장 등 장기에 쌓이게 된다. 혈색소증을 앓을 경우 정상인에 비해 5배, 많게는 20배의 철분이 축적된다. 시간이 지나면 축적된 철이 장기를 심하게 손상시키고, 장기부전 등 합병증을 일으키게 된다. 특히 간과 췌장에 철이 과도하게 쌓이면서 간경변증을 앓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인슐린을 정상적으로 분비하지 못해 당뇨병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또 간경변증을 앓게 된 환자 중 15~30%는 간암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혈색소증은 주로 유전적 원인으로 발병되는데, 빈번한 수혈이나 철의 과도한 섭취에 의해서도 일어날 수 있고, 만성 간질환 환자에서 합병증으로 발병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유전 질환은 어릴 때부터 증상을 보이는데, 혈색소증은 중년 이상의 나이에서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철분이 체내에 축적되는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남성의 경우 대개 40대에 진단되는 경우가 많고, 여성은 그보다 더 늦게 진단된다. 월경을 통해 철분을 주기적으로 배출하는 만큼, 폐경 이후 10~20년 가량이 지나 진단되기 때문이다.
혈색소증의 전형적인 증상은 관절통과 간비대, 만성 피로, 피부 색소침착 등이다. 가장 흔히 나타나는 증상으로는 관절통이 있다. 전체 환자 3분의 2 이상이 손가락과 골반 등에서 관절 통증을 호소하는데, 심한 경우 손가락의 관절이 뒤틀리기도 한다. 이밖에도 내분비계에 철분이 쌓일 경우에는 성기능 저하 증상이 나타난다. 남성의 경우 발기부전과 고환위축 증상을 보이며, 여성에서는 무월경, 갑상선기능저하증 등의 증상을 보인다.
철분 줄이면 예후 좋아
혈색소증은 희귀질환 중에서도 예후가 좋은 편에 속한다. 실제로 간경변증이나 당뇨병 등이 발병하기 전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경우, 생존율은 정상인과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치료 후 10년 기준 생존율은 74%에 달했고, 20년 생존율도 49% 정도다. 특히 40세 이전에 조기 진단을 받은 경우, 조기 치료를 통해 성선기능저하증이 호전되고 심장 기능도 회복됐다는 사례도 있다.
혈색소증은 정맥을 절개해 체내 혈액을 제거하는 사혈 치료를 통해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혈색소증 환자는 조직 내에 과도하게 쌓인 철이 많은 상태인 만큼, 혈액을 제거함으로써 과도한 철분을 일부 제거하는 것이다. 500mL 정도의 혈액을 한 차례 뽑아내면 250mg의 철을 제거하게 된다. 이렇게 사혈 치료를 주기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치료하지 않은 환자에 비해 생존 기간이 월등히 길고, 색소침착과 간비대 등의 증상도 호전될 수 있다.
혈색소증은 음식을 통해 섭취한 철이 몸 안에 쌓이는 질병인 만큼 식사에 주의가 필요하다. 철분이 풍부한 음식으로는 붉은 고기, 완두콩, 시리얼, 파스타 등이 있다. 또 혈색소증을 앓는 동안에는 익히지 않은 조개나 어패류 등은 섭취해서는 안 된다. 혈액에 철분이 많아 혈액 순환이 빠른 만큼,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의 이동 속도도 빨라져 감염에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철분의 흡수를 높일 수 있는 비타민 C 영양제는 먹지 않고, 과일 등의 음식을 통해서만 적당량 섭취하는 것이 좋다. 아울러 과도하게 쌓인 철분과 알코올이 만나면 간 질환 발생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에 혈색소증을 앓고 있다면 반드시 금주해야 한다.
출처: 건강이 궁금할 땐, 하이닥 (www.hido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