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직장인이 한숨을 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 '회사를 가야 한다는 사실'보다는, '회사로 가는 길'이 걱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회사가 먼 직장인들에게 출퇴근 길은 필연적이지만 달갑지 않은 동료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출퇴근 시간이 가장 긴 국가 중 하나다. 영국 워릭 대학교(The university of warwick) 스텔라 쳇지테오차리(Stella Chatzitheochari) 사회 심리학 부교수의 개인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출퇴근 시간은 54.55분으로 선진국(33.8)과 비교해서 20분 이상 차이가 난다. 또한, 통계청의 조사에서도 한국인의 평균 통근 시간은 58분으로 일본(40분)보다 길었다.
출퇴근 시간 길수록 우울증 위험도 높아져
긴 출퇴근 시간은 직장인들의 실제 삶의 만족도와 정신건강에 영향을 끼친다. 지난 17일 아주대학교 병원 정인철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이끄는 연구진은 국제 학술지 ‘대한의학회지(JKMS)’를 통해 이와 같은 내용이 담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출퇴근 시간이 길수록 정서적·신체적 행복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에도 유의미한 악영향을 미친다.
연구에는 '웰빙지수설문지'가 활용되었으며, 국내 직장인 2만 9,458명이 참여했다. 웰빙지수설문지는 개인의 주관적인 삶의 질을 측정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개발한 설문조사로, 정신건강 상태를 묻는 5개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질문은 아래와 같다.
1. 지난 2주 동안 얼마나 자주 행복감을 느꼈나요?
2. 지난 2주 동안 얼마나 자주 평온하고 편안함을 느꼈나요?
3. 지난 2주 동안 얼마나 자주 활동적이고 활기찬 기분을 느꼈나요?
4. 지난 2주 동안 얼마나 자주 상쾌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 휴식을 취했나요?
5. 지난 2주 동안 일상생활이 흥미로운 일로 가득하다고 느꼈나요?
각 질문 문항은 0~5점을 기준으로 채점되며, 0점은 '전혀 그렇지 않다', 5점은 '항상 그렇다'를 나타낸다. 점수가 높을수록 주관적인 행복과 삶의 만족도가 높고, 반대로 점수가 낮을수록 행복과 삶의 만족도가 낮다. 0~13점은 우울증 혹은 정신건강에 문제를 겪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걸 의미하며 전문적인 검사와 치료가 필요한 상태로 분류된다.
설문지 분석 결과, 출퇴근 시간과 직장인의 정신건강 및 삶의 만족도 사이의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출퇴근 시간 20분을 기준으로 잡았을 때, 평균 통근 시간이 60~79분 이상을 넘어가는 직장인은 그렇지 않은 직장인에 비해 삶의 만족도가 낮고 우울증 위험군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1.11배, 통근 시간이 80분을 넘는 직장인은 1.17배 높았다.
이러한 현상은 교통이 복잡한 대형 도시의 직장인에게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반면,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출퇴근하는 직장인의 정신건강은 출퇴근 시간에 상대적으로 덜 영향을 받았다. 지방 소도시 직장인의 경우 출퇴근 시간이 60분이 넘어가도 우울증 위험군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1.02배 증가하는 데 그쳤다.
더불어, 여성이 남성보다 출퇴근 시간에 더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퇴근 시간이 60분 이상인 여성 직장인이 출퇴근 시간이 20분 이내로 걸리는 여성 직장인과 비교해 우울증 위험이 1.18배 증가했지만, 남성 직장인은 같은 조건에서 우울증 위험이 1.06배만 높았다.
연구진은 "출퇴근 시간이 길면 수면시간과 여가 시간이 줄어드는 반면, 복잡한 교통과 소음, 만원 지하철 등 좁은 공간에서의 타인과의 의도치 않은 접촉 등 스트레스 지수를 높이는 요인에 오랜 시간 노출될 확률이 커진다"라고 말하며, "이러한 요인이 직장인의 전반적인 정신건강과 삶의 만족도 감소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는 이러한 요인에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적어 직장인들이 상대적으로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했다.
신체 건강에도 영향 끼쳐, 계단 등 출퇴근을 활용한 운동 필요해
긴 출퇴근 시간은 신체적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2012년 워싱턴 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 연구진이 국제 학술지 예방의학(Preventive Medicine)에 발표한 내용을 살펴보면, 출퇴근 거리가 멀수록 체질량지수, 허리둘레, 대사 위험 등의 건강지표가 나빠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연구진은 “장거리의 출퇴근은 저녁 식사 시간을 늦추고, 스트레스를 많이 주고 수면시간을 줄여 혈당, 혈압, 콜레스테롤 수치를 크게 증가시킨다"라고 설명했다.
건강을 생각하면 출퇴근 시간을 줄이는 것이 좋겠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당장은 불가능하다. 때문에, 출퇴근길을 최대한 활용한 건강관리법이 필요하다. 먼저,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는 직장인이라면 척추와 관절에 부담이 갈 수 있다. 따라서, 자리에 앉았을 때 엉덩이를 등받이에 바짝 붙이고, 다리를 꼬지 않은 상태로 목과 허리를 똑바로 펴 척추와 관절이 받는 압력을 줄여야 한다. 서서 이동할 시에는 몸의 중심을 잡아 체중의 압력이 양쪽 다리로 고르게 분산되도록 해야 하며, 무릎과 발목 스트레칭을 자주 하는 것이 좋다. 더불어,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보다는 계단을 이용해 운동량을 늘리는 것도 건강에 도움이 된다.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의 경우에는, 장거리 운전이 긴장감과 스트레스 지수를 높여 심혈관질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실제로, 2013년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mperial College London) 공중보건대학 연구진이 발표한 연구 내용에 따르면 장거리 운전자는 걸어서 출퇴근하는 직장인보다 당뇨병·고혈압·비만 위험이 각각 40%, 17%, 19%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장거리 운전 후에는 집 소파나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기보다, 짧은 시간이라도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출처: 건강이 궁금할 땐, 하이닥 (www.hido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