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제4대 왕이자 위대한 성군으로 평가받는 세종대왕. 과학, 경제, 농업, 문화 등 분야를 막론한 업적으로 칭송받았지만 건강 관리만큼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은 비만이었으며 당뇨, 신장염, 피부염, 방광염 등 여러 질환을 앓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세종실록에 따르면 세종은 36세부터 허리 통증으로 고생했으며 41살에는 눈이 아프고 시력이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일부 의학계에서는 세종이 겪었던 증상들을 종합해 봤을 때, 그를 괴롭혔던 병 중 하나가 '강직성 척추염'이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강직성 척추염은 면역계 이상으로 인해 척추와 관절에 발생하는 병이다. 염증이 진행되면 관절이 점차 굳어지면서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고 눈, 소화기관, 심혈관계 등 전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강직성 척추염은 어떤 병이며 증상과 치료법은 무엇인지, 재활의학과 김재원 교수(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의 조언을 토대로 알아본다.
세종대왕은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상 인물로 손꼽힌다 |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젊은 나이대 남성에서 주로 발병...유전·면역계 이상 등 관여
강직성 척추염은 만성 염증을 일으키는 류마티스성 질환이다. 몸의 뒤쪽 엉치 부분에 해당하는 천장관절을 비롯해, 척추 및 부착부(힘줄, 인대, 관절막이 뼈에 붙는 부위)에 염증이 발생하는 것이 특징이다. 전체 인구의 약 0.1~2%에서 발병하며, 여성보다 남성 환자가 3배 정도 더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재원 교수는 "강직성 척추염은 다른 요통 질환과 다르게 이른 나이에 증상이 생긴다. 보통 만 26세 전후의 젊은 사람들에게서 발병률이 높고, 80% 이상은 30세 이전에 첫 증상이 나타난다"라고 설명했다.
발병 원인은 명확하지 않지만, 다른 류마티스 질환과 다르게 유전적 소인이 뚜렷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는 "강직성 척추염 환자의 50~90% 정도가 'HLA B27'이라는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유전자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질환이 발병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강직성 척추염은 유전적 요인 외에도 감염, 스트레스와 같은 환경 요인과 면역계 이상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척추 뻣뻣해지고 유연성 떨어져... 주로 아침에 통증 지속
강직성 척추염은 천장관절에서 시작한 염증이 서서히 위로 올라가면서 주로 허리와 엉덩이 통증을 일으킨다. 보통 3개월 이상에 걸쳐 증상이 나타나고 오랜 시간 같은 자세를 유지할 때 통증이 더 심할 수 있다.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심해지면 허리를 구부리거나 펴는 일상적인 동작마저 어려워질 수 있다.
김재원 교수는 "강직성 척추염이 진행됐을 때 엑스레이 검사를 해보면 대나무 모양으로 뼈가 자라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라면서 "강직성 척추염 환자의 20% 정도에서는 척추 증상뿐만 아니라 다른 관절, 특히 고관절이나 어깨 관절 증상도 나타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건선, 소장·대장 부위의 염증, 부착부 염증도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직성 척추염으로 인한 요통은 일반적인 요통과 차이가 있다. 흔히 겪는 요통은 퇴행성 질환으로, 대부분 나이가 들면서 생기거나 허리를 많이 쓰는 사람에게 나타난다. 보통 누워서 쉬면 통증이 줄어들지만 강직성 척추염은 오히려 이른 나이에 발병하고 활동량이 적으면 통증이 심해진다. 김 교수는 "강직성 척추염은 특히 아침에 일어났을 때 뻣뻣함이 30분 이상 지속되는데, 운동을 하고 나면 통증이 나아지고 쉬면 악화된다"라고 설명했다. 새벽에 허리가 아파서 깨거나 엉치 부분에서 통증이 느껴질 수 있고 등, 목, 갈비뼈, 뒤꿈치까지 아픈 경우도 있다. 드물게는 심장, 대장, 신장에서도 통증이 나타날 수 있다.
환자 30% 이상은 '포도막염' 동반...안과 진료 필수
강직성 척추염이 있는 환자의 약 30~50%는 눈에 염증이 생기는 포도막염이 동반되는데, 세종 역시 포도막염을 앓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종실록에는 '두 눈이 흐릿하고 깔깔하며 아파 봄부터 음침하고 어두운 곳을 걷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어젯밤부터는 책 읽기가 수월할 만큼 좋아졌다'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는 포도막염의 주요 증상인 시력 저하, 광과민성, 안구건조감과 유사하다. 또한 '어젯밤부터는 책 읽기가 수월할 만큼 좋아졌다'는 기록은 호전과 재발을 반복하는 포도막염의 특성과도 일치한다.
김재원 교수는 "관절 증상이 나타나기 전 포도막염으로 인해 강직성 척추염이 진단되는 경우도 있으므로, 강직성 척추염이 있다면 안과 진료는 필수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포도막염을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염증이 안구의 후부로 확장될 수 있고 유리체염, 유두염, 망막 혈관염, 낭포성 황반부종, 망막전막, 평면부 삼출물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스테로이드를 비롯한 다양한 점안 약물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꾸준한 관리로 정상적 생활 가능해..."관절 유연성 높이는 운동 효과적"
강직성 척추염을 방치하면 뼈가 통째로 붙어 굳을 수 있고, 척추 변형이 일어나 작은 충격에도 골절이 발생할 위험이 높아진다. 특히, 일찍 발병할수록 기능적으로 더 나쁜 예후가 예상되고 다양한 합병증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조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임상 증상과 함께 유전자 검사, 혈액검사, 영상 검사 등을 종합해 진단한다. 완치가 어려운 병으로 알려져 있지만 꾸준히 관리하면 증상이 완화되고 거의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관절을 유연하게 유지하는 운동 요법과 염증을 완화하는 약물 요법, 올바른 자세 등을 유지하는 생활습관 개선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
약물로는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제와 항류마티스 약제 등을 사용한다. 운동 요법의 경우 체조와 스트레칭을 꾸준히 해주면 허리 관절의 유연성을 유지할 수 있고 뻣뻣함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김재원 교수는 "강직성 척추염은 규칙적인 운동이 필수적이다. 특히 척추체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많은 관절들을 사용하는 수영이 도움이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단, 과격한 운동은 피해야 한다.
평소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김 교수는 "바른 자세를 유지하면 척추의 변형을 줄이거나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라면서 "통증이 있다면 핫팩이나 아이스팩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 이는 통증과 근육의 긴장을 줄여주어 증상 완화에 효과적이다"라고 전했다. 강직성 척추염은 허리가 굽는 질환으로, 잠을 잘 때는 푹신한 매트리스보다는 단단해서 허리를 받쳐줄 수 있는 매트리스가 좋고 낮은 베개를 사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포괄적인 재활치료와 호흡재활치료, 유연성 운동은 질환의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다. 김 교수는 "질환의 중증도와 침범된 관절에 따라 개별화될 필요가 있으므로, 재활치료와 관련해서는 전문가와 상담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출처: 건강이 궁금할 땐, 하이닥 (www.hido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