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의 정의, 역학, 원인, 임상증상, 치료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정의
조현병 스펙트럼 및 정신병적 장애(schizophrenia spectrum and other psychotic disorder)란 정신 질환 통계 열람 제 5편(DSM-5-미국 정신 의학회에서 발행되는 진단책)의 개념으로 대체로 정신병(psychosis)을 의미합니다.
즉, 망상, 환각이 있고, 자신의 병적 상태에 대한 병식이 없고, 자아의 경계(ego boundaries)가 상실되고, 현실 검증(reality testing) 능력이 크게 손상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조현병이 가장 대표적이고 가장 흔한 정신병적 장애입니다. 그러나 조현병 진단 기준에는 꼭 맞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정신병적 증후군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망상장애, 단기정신병적 장애, 다른 의학적 상태에 의한 정신병적 장애, 조현 정동 장애 등이 있습니다.
2. 역학
조현병은 전 세계적으로 평생유병률(특정 시점에서 질병 발생률)은 인구의 약 1%로서 흔한 정신병의 하나입니다. 국제적 연구에 의하면 조현병의 유병률과 발병률(특정 기간 내에 질병 발생률)은 서양과 동양,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등 지역, 인구, 문화적 특성에 관계없이 대체로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발병률이 가장 높은 연령층은 젊은층으로서 남성의 경우 15-24세(평균 21.5세-우리나라의 경우 군복무하는 시점일 경우 높음), 여성은 25-34세(평균 26.8세)로서 남성이 다소 일찍 발병합니다.
드물지만 45세 이후에 발병하는 이른바 후기 발병조현병(late- onset schizophrenia)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발병률에 남녀 차이는 거의 없으나 일반적으로 치료반응과 예후는 남성보다 여성에서 더 좋습니다.
3. 원인
조현병의 원인에 관한 학설은 매우 많지만 뚜렷한 원인으로 밝혀진 것은 아직 없습니다. 근래 들어 조현병의 원인론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게 인정되고 있는 이론은 어느 한 원인에 의해 조현병이 발병하기보다는 여러 요인이 합해져서 발병에 기여한다는 것입니다. 즉 영아기 이전에 뇌발달에 이상을 가져올 수 있는 어떠한 요소가 작용하여 비정상적 뇌신경발달이 이루어질 수 있는데, 이는 어떤 개인의 조현병에 대한 특별한 취약성(diathesis or vulnerability)으로 작용합니다.
이러한 취약성을 가진 사람이 사춘기를 지나 성인기에 접어들면서 환경적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비로소 증상이 발현하는데, 여기서 환경적 스트레스는 생물학적인 것일 수도 있고, 정신사회적인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론을 스트레스-취약성 모델(stress-diathesis model)이라고 하는데, 이 이론은 취약성의 기반을 신경발달가설(neurodevelopment hypothesis)에 두고 있습니다.
유전적 요인을 살펴보면 가계 연구에서 조현병이 가족 내에서 전파된다는 증거를 계속 제시하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의 조현병 이환위험률(morbid risk)은 약 1% 인 데 비해, 부모 중 한사람이 조현병일 경우 그 자녀들의 이환위험률은 8-18%이며, 양친이 모두 환자일 경우 이환위험률은 35-45%로 높아집니다.
다른 생물학적 원인들 중에서 가장 지배적인 조현병 병인론이 도파민 가설(dopamine hypothesis)입니다. 이 가설의 주요한 근거는 항정신병 약물의 효과가 도파민 수용체(특히 도파민 D2수용체) 차단효과와 밀접한 상관성을 갖는다는 것, 도파민 활성을 항진시키는 암페타민(amphetamine-히로뽕이라 불리는 메스 암페타민계열)과 같은 약물에 의해 조현병 증상이 유도되거나 악화된다는 것, 도파민의 주요 대사물인 호모바닐린산(homovanillic acid)의 혈장 농도가 조현병에서 증가한다는 것, 이 물질의 증가가 조현병 증상의 심각도 및 치료반응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 등입니다.
또한 최근에 우세해지는 견해를 보이는 이론이 신경회로(neural circuit)의 장애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발달 초기 전전두엽(뇌표면을 해부학적, 기능적으로 구분한 머리 제일 앞쪽 부위)에 연결된 도파민경로의 손상이 전전두엽과 변연계(아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으나 뇌를 크게 3부분으로 나눌 때 중간 부위에 위치한다고 생각되며, 인간의 감정조절, 기억 유지 등에 중요하다고 알려진 부위) 기능에 장애를 야기하여, 환청, 망상 등 증상과 인지 능력 손상 등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정신면역학적으로 환자가 태어난 계절, 즉 겨울철이 조현병의 발생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1988년 인플루엔자가 조현병 발병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첫 번째 연구결과가 발표됨으로써 이 분야의 연구는 획기적으로 발전하였습니다. 1957년-1958년 겨울에 A2 인플루엔자의 대유행이 있었는데, 이 시기에 핀란드의 헬싱키에 살던 임신부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에서 조현병 발병률이 대조군보다 유의하게 높았습니다. 즉, 조현병 환자 중 많은 수가 북반구에서는 1-4월에 태어나고, 남반구에서는 이 경향이 역전되어 7-9월에 출생이 많다고 합니다. 또한, 이런 계절에 따른 차이가 북반구에서는 공업화가 고도로 이루어진 북서쪽에서 더 두드러진다는 사실로 인해 조현병에 바이러스 감염이 중요한 역할을 할지 모른다는 가설도 제시되었습니다. 이런 공업화된 대도시들은 저소득과 인구밀집이 특징으로, 이런 지역에서는 인플루엔자에 감염될 위험이 높아지고 따라서 조현병이 발생할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4. 임상 증상
환자는 보통 수개월 내지 수년에 걸쳐 서서히 발병하면서 병전 증후(premorbid sign)를 보이는데, 이는 발병 전 행동특징들을 말합니다. 대개 조현성(schizoid) 내지 조현형(schizotypal) 성격장애를 보이는바, 조용하고 수동적이며 내성적입니다. 병전 증후들에 이어 전구 증상(prodromal symptom)들을 보입니다. 초기 전구 증상으로는 두통, 신체 통증, 무력감, 소화장애 등 신체증상을 표현하는 수도 많으나 이들은 의학적 근거가 없습니다. 학교, 직장 등 사회적 활동의 기능이 위축됩니다.
흔히 발병 전에 주위 사람들은 그 사람이 뭔가 변하였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또는 추상적 사고, 철학, 종교 등에 심취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괴상한 생각과 행동과 언행, 비정상적 감정 반응 및 괴이한 착각 등을 보입니다.
주 증상은 정신병리학자들에 의해 단순화 되어, 양성 증상(positive symptoms) 및 음성 증상(negative symptoms)으로 나누어지는데, 양성 증상은 정신기능의 왜곡이나 과도를 보이는 것으로, 망상, 환각, 지리멸렬한 사고 장애 등으로 뚜렷한 조현병의 증상이기에 주위 사람들의 관심을 끕니다.
음성 증상은 정상적으로 나타나는 정신기능들의 소실, 결핍 또는 감소로서, 무언증, 감정 둔마(거의 늘 무표정한 감정 상태를 말함,affective blunting), 무의욕증 등이 있습니다.
[그림] 조현병 원인에 대한 도파민 가설
5. 치료
치료의 대원칙은 조기발견(early detection), 조기 치료(early prevention) 및 재발 방지(relapse prevention) 입니다. 발견과 치료가 빠르면 빠를수록 치료효과가 좋습니다. 첫 발병 후 치료를 받기 시작할 때까지의 기간을 duration of untreated psychosis(DUP)라 하는데, 이 DUP가 빠를수록 예후가 좋습니다.
치료는 약물치료, 개인정신치료, 사회재활치료 모두가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조현병의 약물치료는 정신병적 증상에 대한 항정신병 약물의 사용과 기타 불안, 우울증, 불면증 등에 대한 약물 사용으로 구성됩니다. 정신병적 증상에 대한 항정신병 약물의 실질적인 가치가 대단하다는 것은 여러 객관적 연구방법에 의해 증명되었으며, 특히 조현병의 양성증상을 경감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항정신병 약물을 투여하면 진정작용이 먼저 나타나고 항정신병 효과는 그보다 늦게 나타납니다. 보통 망상, 환각, 사고장애 등의 양성증상이 먼저 호전되며, 정서적 둔마, 의욕 저하, 사회적 위축 등 음성 증상은 서서히 장기간에 걸쳐 호전됩니다.
정신치료가 조현병에 효과가 있는가에 대한 논란은 있습니다. 즉, 신경증 환자와 달리 정신병 환자의 전이(transference)는 현실적으로 상당히 왜곡되어 있는 등의 문제로 정통적인 정신분석치료가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그러나 배려하는 마음으로 열정을 가지고 성역으로서의 치료공간을 제공하는 치료자의 태도는 혼란상태에 있는 조현병 환자의 치료에 핵심적인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조현병의 개인 정신치료는 정신분석적 기법 보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지지정신요법(supportive psychotherapy)이 선호됩니다. 즉 환자가 새로운 대응전략, 문제해결 능력 등을 배우게 하고 스트레스와 재발과 관련한 문제를 인식하게 합니다.
만성 조현병 치료에 있어 중요한 것은 환자가 어느 정도 회복하여 사회에 복귀하려 할 때 이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 수가 많다는 것입니다. 환자의 역량부족이 문제이고,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정적이러서 환자가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러한 어려움 사회 복귀를 돕는 치료를 크게 사회재활치료 또는 사회 복귀 훈련이라 부릅니다. 사회화(socialization), 가족치료, 학교교육 및 직업교육, 약물치료 등을 통합한 집중치료를 상당 기간 동안 지속하면 많은 환자를 사회 복귀로 이끌 수 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 강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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