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사용장애.
생소하게 들릴 수 있는 이 단어는 알코올 중독의 공식 질환명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알코올 사용장애로 진료받은 사람은 7만 5,000여 명이다. 성별로 보면, 남성이 5만 8,000여 명, 여성이 1만 7,000여 명으로 남성 환자가 여성 환자보다 약 3.4배 더 많다.
남성 알코올 중독 환자가 더 많은 이유에 대해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덕종 교수는 생물학적인 요인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측했다. 그는 "대부분의 인종과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남성 환자가 더 많은 현상이 나타난다"며 "중독되는 뇌로 진행되는 과정에 연관된 신경전달물질 수용체가 남성이 여성보다 활성화되어 있다는 연구가 있다"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 문화적 요소도 남성 환자 비중을 더 높게 만든다. 남성 음주에 관대한 문화, 남성이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경우가 더 많은 환경적 요인, 임신과 양육 과정에서 여성이 금주하는 상황 등이 작용하는 것이다.
비록 여성 환자가 적을지라도, 알코올 사용장애는 여성에게 더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여성은 남성보다 술을 분해하는 효소가 적다. 또, 체내 지방조직에 비해 알코올을 희석할 수 있는 수분의 비중도 적어 결국 알코올 체내 흡수량이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증가한다. 즉, 남성과 여성이 같은 양을 마셔도, 알코올의 독성은 여성에게 더 높게 나타나 간질환, 위장 장애 등이 발생할 위험이 커지는 것이다.
2018년 알코올 사용장애 전체 진료 인원 중 가장 많은 연령대는 50대로 전체의 26.5%를 차지한다. 이어 40대가 20.4%, 60대가 18.7% 순이다. 이에 대해 이덕종 교수는 50~60대는 과한 음주로 인한 여러 어려움이 겉으로 드러나고, 환자의 건강 및 사회적 문제가 심각하게 발현되는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알코올이 신체 및 뇌 건강에 끼치는 해로움은 점차 축적되는데, 우리 몸이 저항할 수 있는 힘은 점차 약화된다. 이것이 맞물려 장년층 이상이 되면 건강 문제가 심각해져 결국 병원을 방문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알코올 중독은 습관 아닌 뇌 질환
알코올 사용장애는 유전적으로 중독적 물질 사용에 취약한 사람들이 스트레스, 심리적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술을 마시게 되고, 음주가 반복되면서 뇌의 중독회로가 강화되어 형성되는 뇌 질환이다.
체내로 들어온 알코올은 뇌의 특수 중추신경계인 '보상회로(보상계)'를 자극하는데, 이때 쾌감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된다. 그런데 술을 반복적으로 마시면, 보상회로가 지나치게 자극돼 회로의 기능적 변화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똑같은 양을 마셔서는 예전 같은 만족감을 느낄 수 없게 된다. 쾌감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이전보다 더 많은 알코올을 섭취해야 하는 것이다.
이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보상회로의 조절 기능은 망가진다. 알코올에 대한 갈망감은 강화되고 알코올을 섭취하지 못하면 금단 현상을 느끼게 된다. 이와 더불어 알코올은 통제력과 판단력을 적절하게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뇌의 영역인 전두엽의 기능을 약화시킨다. 이로써 알코올 중독이 진행될수록 통제가 불능한 상태에 빠져버린다.
나도 알코올 중독일까?...진단 기준은
미국 정신의학협회에서 출간한 정신질환 진단 통계 매뉴얼은 알코올 사용장애에서 나타나는 주요 증상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다음의 11가지 항목 중 2가지 이상 해당한다면 알코올 사용장애일 가능성이 크다.
1. 술을 종종 의도했던 것보다 더 많이 마시거나 오랜 기간 동안 마심
2. 음주량을 줄이거나 조절하려고 했으나 실패함
3. 음주와 관련된 활동에 많은 시간을 보냄
4. 술에 대한 갈망이 있음
5. 반복적으로 술을 마셔 직장 등에서 주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실패함
6. 술로 인해 사회적 혹은 대인관계 문제를 겪음
7. 음주 때문에 중요한 사회적, 직업적 활동 및 여가를 줄임
8. 신체적으로 해가 되는 상황에서도 반복적으로 술을 마심
9. 술로 인해 신체적, 심리적 문제가 유발되거나 악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을 알면서도 계속 음주함
10. 술에 대한 내성
11. 금단 증상
여기서 술에 대한 내성이란, 술을 마셔 원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 음주량을 크게 증가해야 하거나 동일 용량의 술을 계속 마실 경우 효과가 현저히 감소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알코올 금단 증상은 금주 혹은 절주하고 나서 수 시간에서 수 일 동안 생기는 복합적인 신체적, 심리적 증상이다. 발한 또는 빈맥, 손 떨림, 불면, 오심 또는 구토, 일시적 환각, 정신운동 초조, 불안 등이 생길 수 있다. 때로는 섬망이나 발작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알코올 사용장애 치료의 첫걸음은 진단
우리 뇌가 중독된 상태가 되는 것은 어느 한순간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이뤄진다. 어떤 스트레스나 갈망감에 굴복하여 술을 마실수록 우리 뇌의 알코올 중독회로는 점차 강화되며 더욱더 알코올에 취약해진다.
적절한 시점에 알코올 사용장애를 치료하지 않으면, 뇌기능이 저하되고 심장과 간 등 체내 여러 장기가 망가진다. 또한 술과 관련된 인지적, 정서적 왜곡도 점차 강화된다. 이 때문에 알코올 사용장애 초기에 병원에 방문해 적극적으로 치료해야만 완치되고 회복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의 면담을 통해 알코올 사용장애로 진단되면, 신체적 이상이 있는지 알기 위해 혈액검사와 심전도 검사 등을 진행한다. 이상 소견이 있다면 관련 내과와 협의 진료한다. 또, 뇌파나 뇌영상 검사 및 신경과 진료가 필요한 경우도 많다. 알코올의 신경독성 및 전신 영양 결핍 때문에 보행 이상과 손 떨림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금단 섬망이나 발작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장년 및 고령 환자에서는 뇌의 구조적인 위축이 나타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MRI 등의 뇌영상 검사가 권유된다.
의지만으로 극복 못하는 알코올 중독 치료 방법
많은 알코올 사용장애 환자는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술을 끊을 수 있다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다. 이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금주하는 것보다 술을 차차 줄이려는 시도부터 한다. 하지만 절주가 아닌 금주해야 알코올 사용장애를 치료할 수 있다. 수개월간 금주를 유지해야만 뇌에 강화되어 있는 중독회로를 약화시키고 뇌기능을 안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가 금주를 시작하면 약 6시간 이후부터 심한 금단 증상이 나타난다. 불안감이 커지고,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맥박이 빨라지고 환각을 경험하기도 한다. 금단 증상이 나타나면 약물 치료를 시행해 뇌 활성의 균형을 되찾게끔 돕는다. 이때 사용되는 약물은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신경 안정제 등이다.또 알코올로 손상된 신체와 뇌를 회복하기 위해 고농도 비타민이 함축된 수액치료를 병행한다. 술만 마시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하지 않는 환자가 많아 필수 영양소가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영양소 섭취가 부족한 상황에서 체내로 들어온 알코올은 비타민 B1의 흡수를 억제한다. 이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비타민 B1 결핍 등 필수 영양소 결핍을 겪고 있다.
이러한 해독 과정이 끝나면 금주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술에 대한 갈망을 줄이는 약물을 투여한다. 대표적인 항갈망제는 아캄프로세이트(Acamprosate)와 날트렉손(Naltrexone)이다. 아캄프로세이트는 알코올 의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뇌의 수용체에 작용하여 알코올에 대한 갈망을 줄이는 작용을 한다. 날트렉손도 알코올에 대한 갈망을 줄이고, 술을 마셨을 때 나타나는 쾌감을 감소시켜 알코올 섭취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
또 상담치료와 인지행동치료를 통해 인지 왜곡을 교정하고 정서적 스트레스 요인을 완화한다. 의료진은 환자가 술에 의존하지 않는 삶의 방식을 찾아가고 만들어가게끔 돕는다.
출처: 건강이 궁금할 땐, 하이닥 (www.hido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