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이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하게 보이는 백내장. 백내장은 우리 눈에서 카메라 렌즈 역할을 하는 수정체가 뿌옇게 혼탁해져서 시력장애가 발생하는 질환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야가 점점 흐려져 실명에 이를 위험이 있으며, 수술 이외에는 치료 방법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60세 이상이 되면 전체 인구의 70%가, 70세 이상이 되면 90%가 백내장 증상을 경험하며, 특수한 경우 젊은 나이에 백내장이 나타나기도 한다. 백내장 수술은 우리나라에서 매년 가장 많이 이뤄지는 수술이다. 약물로 증세가 호전되지 않는 탓이 크다. 그런데 최근 약물을 활용한 백내장 치료의 가능성을 밝힌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앵글리아러스킨 대학(Anglia Ruskin University, ARU)의 연구팀은 백내장을 가진 쥐를 대상으로 약물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VP1-001이라는 옥시스테롤(Oxysterol) 화합물을 안약으로 투여받은 쥐에서 백내장 증상이 눈에 띄게 개선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절반 가까이(46%)의 사례에서 약물 치료의 효과로 시야의 불투명도가 감소한 것이다.
백내장은 수정체의 단백질 변성으로 발생한다. 수정체는 사물의 위치에 따라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투명한 조직으로, 멀리 있는 물체를 볼 때는 수정체가 얇아지고 가까이 있는 물체를 볼 때는 수정체가 두꺼워져 망막에 초점을 맺게 한다. 노화나 여러 원인에 의해 수정체의 단백질이 와해되면 빛을 산란시키고 망막으로 전달되는 것을 방해하는 단백질 덩어리가 만들어져 시야가 흐려진다.
그런데 이번 연구에서 VP1-001 화합물을 활용한 결과, 단백질 조직이 회복되었으며 이러한 회복이 수정체의 기능을 향상시켜 시야를 선명하게 하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수정체가 혼탁해지는 것을 더디게 해줄 뿐이었던 기존 약물 치료의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혼탁한 수정체를 꺼내고 인공 수정체를 삽입하는 외과적 수술 없이도 약물을 통해 시야가 선명해질 수 있음을 밝혀낸 이번 연구는 백내장 치료에 큰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를 이끈 바바라 피어시오넥(Barbara Pierscionek) 교수는 “해당 분야에서 이러한 연구 성과는 세계 최초”라며 “이번 연구가 백내장 치료에 있어 항백내장 약물의 긍정적인 효과를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일부 백내장에서는 약물 치료 효과가 있었으나, 일부 백내장에서는 특별한 효과가 없었다. 이는 약물을 통해 치료할 수 있는 백내장의 특정 종류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백내장 치료 약물을 개발할 때 백내장 종류에 대한 구분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피어시오넥 교수는 꾸준히 시력 개선을 위한 연구를 해왔으며, 그의 연구팀은 2021년 수정체에서 아쿠아포린 단백질이 시력 발달을 저해하고 백내장을 유발하는 기전에 관해 밝힌 바 있다.
이 연구 결과(Oxysterol Compounds in Mouse Mutant αA- and αB-Crystallin Lenses Can Improve the Optical Properties of the Lens)는 안과연구와 시각과학회지(Investigative Ophthalmology & Visual Science)에 실렸고, DailyMail 등의 외신에서 보도했다.